왜 우리는 보지를 보지라 부르지 못하고 자지를 자지라고 부르지 못하나

우리는 신체의 부위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문화적 특성상 신체의 부위를 지칭하는 이름이 두개씩 있습니다. 우리말 명칭과 한자어 명칭. 이 둘은 동등성을 가지며 어느 한 명칭이 다른  명칭보다 수직적 차이가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폐와 허파의 경우 둘 다 같은 호흡 기관을 칭하는 용어이며 둘 간의 동등성을 보여줍니다. 신장과 콩팥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유독 그렇지 않은 신체 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성기입니다.

음부, 음경등은 남녀의 성기를 지칭하는 한자어이자 용어입니다. 하지만 보지와 자지는 똑같이 남녀의 성기를 지칭하는 용어이자 우리말이지만 비속어로 통합니다. 좆과 씹은 더하지요.

이상하지 않나요? 혹은 이에 대해 이상하다는 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말이며 부르기 더 친숙한 자지와 보지는 사람들이 입밖으로 꺼내기 꺼려합니다. 사석에서는 사용할지언정 공석에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지탄을 받으며 저속하고 음란하고 매우 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비난을 받습니다. 사석에서도 자주 사용을 하면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이를 돌려서 말을 합니다.

소중이, 똘똘이, 잠지, 봉지, 밑, 아래, 거기, 꽃잎 등등

심지어는 외국어를 차용하기도 하죠

페니스, 요니, 링감, 벌바

왜 그럴까요? 누구나 다 달려 있는 신체 기관입니다. 이 기관을 언급하면 꼭 섹스나 성적인 의미가 부여되나요? 부여되면 무조건 음란하고 저속한가요? 누구나 다 하는 섹스인데요??


용어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확히는 이름의 문제죠.

김철수, 이영희 등의 이름은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중립적인 용어입니다. 가위, 칼, 바위, 나무 등은 해당되는 사물등의 대상을 지칭하는 중립적인 명사입니다. 나무를 구성하는 기관의 명사들인 뿌리, 가지, 잎, 껍질 등등은 모두 중립적인 단어입니다. 이 중에서 뿌리만 음란하거나 저속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요.

하지만 우리는 특정 단어에는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 이외에 다른 의미 부여를 종종합니다. 사회문화적으로 적용하고 써온 사례가 누적되면 그 단어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부여되기도 합니다.

가령, ‘아가씨’라는 단어는 미혼의 여성을 공손하게 지칭하는 말입니다. 혹은, 친족간의 호칭으로도 사용됩니다. 하지만 현재에 있어선 지나가는 여자에게 남자가 ‘아가씨’라고 부르면 굉장히 기분나빠할 수 있으며 성희롱의 범주에 까지 들어갑니다. 이는 그 동안 아가씨라는 단어를 사용한 목적이나 용도에 의해 내재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형성되서 그렇습니다. ‘오, 브라더스’라는 밴드의 노래 가사 중에 [오~ 아가씨~어찌 그리 예뻐요]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요즘의 세태에 따르면 이 가사는 성희롱의 목적을 담고 있는 지극히 여혐적인 가사로 누군가에게 정의될 수도 있습니다.

자지, 보지, 좆, 씹등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의거, 비속어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비속어의 정의는 [통속적으로 쓰는 저속한 말]이라고 합니다. 즉, 단어 자체가 중립적이라고 하더라도 점유율이 높은 쓰임새가 저속하면 비속어가 되는 것입니다. 즉, 위에서 예를 들었던 ‘아가씨’라는 표현도 인식과 개선이 없으면 비속어가 된다는 것이지요.

순우리말 단어라 할지언정 통속적으로 저속하게 쓰면 비속어로 정의가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비속어는 우리말이 아니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기도 합니다. 실제로 자지, 보지, 씹, 좆은 우리의 성기를 가리키는 적확한 단어라고 설명을 하면 사전을 띡 하고 가져와 ‘이건 우리말이 아니라 비속어인데요? 사전에 써 있는데요?’라고 반박을 하고 비아냥거립니다. 한국말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밝혀지는 순간이죠.

https://commons.wikimedia.org

또 누군가는 자지, 보지, 좆, 씹이 어떻게 우리말이냐고 합니다. 근거가 있냐고(보지는 보배로운 연못이라는 한자어라고 주장하는 무리도 봤습니다).

보지, 자지의 어원에 대한 설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퇴계 이황과 이항복의 문답에서 나온 얘기이죠.

이항복이 이황 앞에 나아가 “여자의 소문을 ‘보지’라 하고, 남자의 양경을 ‘자지’라 하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다.

당돌하기 그지없는 이항복의 질문에 당대의 유학자 이황은 “여자의 소문(小門)은 걸어 다닐 때 감추어진다고 해서 걸음 ‘보(步)’ 감출 ‘장(藏)’ 갈 ‘지(之)’ 세 자로 보장지이고, 남근은 앉아 있을 때에 감추어진다고 해서 앉을 ‘좌(座)’ 감출 ‘장(藏)’ 갈 ‘지(之)’ 세 자로 좌장지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옥문을 말하기 쉽도록 일컫어 감출 장(藏)은 빼고 “보지”라 하는 것이라 설명했고, 남근 역시 감출 장을 빼고 좌지라 한 것인데 잘못 전해져 발음이 변해 “자지”라 하는 것이라 밝혔다.

또는 언어학적인 구조론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상을 뜻하는 조(祖)의 고자는 且였는데, 곽말약의 금석문 연구에 따르면 이 글자는 본래 남근을 형상화 한 것이고, 왼쪽 부수는 나중에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여성이 제사를 집전했는데, 제사상에 규라는 이름의 남근조각상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상의 어원은 좃이라는 거다. 이는 고대의 남근숭배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는 늘 할아버지를 좆이라고 부르면서도 그것을 욕이라고는 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좆은 원래 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지의 어근인 잦은 젖과 같은데 주둥이(줒+웅이)라는 뜻이다. 좆도 같은 뿌리로 본다. 고대어는 모음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잦, 젖, 좆, 줒은 넘나드는 것이다.

언어적으로, 한글학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한글학회에서 풀이한 자지와 보지, 좆, 씹의 어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녀 성기의 이름은 씨(종자)와 씨를 심을수 있는 밭과 논(토지)에 어원을 두고 있다.
사람의 생식과정을 성인 남자에게서 나온 씨를 성인 여성의 몸에 심는 농사에 비유하고
여기에서 남녀 성기의 이름을 만들어 냈다.
*

남자어른의 성기의 이름 “좆”은 씨(종자)가 나오는 곳에서 나온 말이다.
이를 우리말 공식에 대입하면
종 = 조
자 = ㅈ

가 나오는

곳……조 ㅈ =  좆.
*

성인여자의 성기이름 “씹”은 씨가 들어가는 곳(入 = 입)에서 나온 말이다.

씨 = 씨

입 = ㅂ

하는

곳…………씨 ㅂ = 씹

*

여자성기의 이름 “보지”는 밭과 논의 일종(아지)에서 나온 말이다.
역시 이를 우리말 공식에 대입하면
밭 = ㅂ

논 = ㅗ

아지 = 지……..ㅂ ㅗ 지 = 보 지
*

남자 어린이의 성기인 자지는 종자의 아지(일종) 에서 나온 말이다.

이를 우리말 공식에 대입하면
종 = ㅈ
자 = ㅏ


아 = ㅏ
지 = 지………..자 지 가 된다.

** 결코 비속하지 않은 순 우리말이다.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즉, 보지와 자지, 씹, 좆은 순우리말인 것이 언어학적으로 맞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비속어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비속어로 정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성을 숨기고 음란하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양지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도 처음부터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고 그 만큼 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신체 기관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단어로서 사용을 못하게 되는 것이죠. 자지를 자지라 부르지 못하고 보지를 보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이미 비속어로 정해지고 쓰이는 것인데 왜 인정을 안하는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자지 보지에 집착하는 성도착환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이미 정해지고 쓰이고 있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지 않으면 부조리한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투표권이 없었을 때 참정권 보장에 대한 투쟁을 하지 않고 걍 정해진대로 살았다면 아직도 여성들은 투표를 못했겠죠.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예전처럼 [이성간의 마음]만으로 남아있었다면 동성간, 무성간 등등 정말 우주상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라는 행위와 마음은 인정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웨이크업과 형제 사이트인 레드홀릭스가 당당한 성을 깨우고 양지로 드러내고 성평등을 추구하기 위한 일환으로 ‘자지’와 ‘보지’를 드러내놓고 쓰자고 운동하고 있으며 웹사이트 상에서도 다른 단어로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쓰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당장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얘기를 하며 자지 혹은 보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큰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회가 될 때 현재는 비속어일지언정 우리말인 자지와 보지를 그대로 써야하는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여러분들이 한두 사람씩 퍼져나가면 분명 언젠가는 인식이 바뀔 것입니다. 사랑처럼 말이죠.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