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에 대한 짧은 옹호

마광수 교수님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저 역시 ‘즐거운 사라’ 사건이 컸습니다.

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고 크면서 에로티시즘을 접하고 학부에 들어가 문학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점점 더 그분의 이름은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한국 문단에서는 26세라는 매우 젊은 나이에 등단하고 28세에 정식으로 교수에 임용된 국문과 ‘최연소 교수 임용’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계시죠.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더 이상의 연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윤동주에 관한 연구를 완벽하게 완성하였으며 윤동주에 대해 인용을 할 때의 기준이 되는 틀을 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20대 중후반에 완성을 했다는 것이죠.

물론, 교수 생활을 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절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휩싸였고 그 때문에 생각 외로 학술적 성과물이 적은 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물을 꿰뚫어 보며 던지는 짧은 문장 속에 촌철살인의 언력을 실어내던 분입니다. 비평에도 천재적이었죠.


마광수 교수는 생전에 주장하며 실천을 했던 가장 큰 것은 문학의 지적 허영을 비판하며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문단에 만연한 것이 문학적 허세입니다. 복잡한 작문 기교와 일반인들은 ‘공부‘를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국문학적 코드들로 점칠 된 작품들이 예술적 경지가 높다 하며 찬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요.

 

글을 읽기 쉽게 쓴다는 것은 사실 상당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문창과적인 기교만 있다면 글을 화려하게 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독자가 작가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가독성 혹은 딕션을 높이면서 글을 쉽게 쓰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글을 잘 못 쓰거나 말을 잘 못 하는 사람들이 자꾸 어려운 말을 쓰거나 길게 늘어뜨리거나 합니다. 하지만, 문단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예술성의 이름으로 문장의 기교를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광수 교수의 작품들을 접하면 문장이 상당히 읽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기대하고 접근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별거 없다면서 실망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기존 문인들이나 교수들도 쉬운 문필에 반감을 품고 물어 뜨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으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별거 없다‘라고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광수 교수를 제가 접하고 꼭 한번 그분의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모교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업을 못 들은 것이 한이 되는 것은 바로 에로티시즘에 대한 그분의 행보 때문이죠.

기성 문단에 속한 사람이자 국문과 교수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섹슈얼리티에 대해 솔직하게 외치고 작품으로 실천을 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에로티시즘을 다룬 사람들은 매우 많았죠. 하지만, 교수의 신분으로서 거리낌 없이 성을 이야기한 것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최초입니다.

그렇기에 당시 사회 분위기상 물어뜯기고 징역형을 받고 복직 후에도 동료 교수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죠.

이 사건은 단순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것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졸렬함과 이중성을 보여준 사건이자 상황이죠.

마광수 교수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동료 교수들에게 외면당했다는 사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야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봅니다.

출처: http://www.hani.co.kr

마광수 교수가 주장과 실천을 했던 에로티시즘은 솔직함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성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양지에서 솔직하게 표현하고 해소하되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자 삶이었습니다.

예전 학부 동아리 활동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같은 동아리 회원이자 과 동기였던 여자 사람 친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문학부의 활동으로서 마광수 교수의 인터뷰하러 간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네는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야한 작품들을 계속 쓰세요?”

그에 마광수 교수는 아주 순수한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고 하더군요.

“야한 게 좋으니까요.”


 

그의 작품들을 보면 작품 속에서 구현하는 에로티시즘은 탐미적이고 인공미를 찬양하며 남녀를 불문하고 자유로운 섹스를 강조합니다. 물론, BDSM 적인 주종관계의 결이 있는 성적 유희의 구현도 상당히 많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 특히 여성들이 반발하고 분노를 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여자는 무조건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노력하고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며 남자의 모성애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성적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편안하고 야한 여자를 주장하고 여성의 외모 우월주의와 상품화를 조장한다…. 라며 쓰레기 취급을 합니다.

요샛말로 하자만 한남충이라고 욕을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러한 반응들에 대해 마광수 교수는 생전에 한마디로 일축을 합니다. “XX 놈들이 현실이랑 소설을 구분 못하는 거지”

 

물론, 근래에 자리 잡히고 있는 성평등 의식과 인권의 관점에서 마광수 교수의 어록을 살펴보면 구설에 오를만한 발언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새 분위기에서 매장당할 발언들이나 글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많죠.

그래서 초기에 섹슈얼리티에 대한 주장의 골자가 후에 토론회 등의 논증의 장에서 외모지상주의적이거나 여성혐오적인 발언으로 간주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보입니다. 그렇다보니 언행불일치적인 면모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하지만, 그의 실제 생활을 살펴보면 현실이랑 소설을 구분 못 하는 것들의 발언…이라는 말이 아예 틀리거나 억지스러운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광수 교수의 경우 생을 마감하기까지 성범죄적인 이슈나 변절, 이중성 시비에 대한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물어뜯고 맹비난을 하던 사람들이 마광수 교수가 되받아친 욕설대로 대부분 문제가 생겼지요 (이문열, 고은, 공지영 등등)


그가 실제로 주장하는 섹슈얼리티와 페미니즘의 내용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지적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가령, 본인의 교양 수업 교재로서 쓰인 <문학과 성>(철학과 현실사, 마광수 지음)을 살펴보면 박완서 선생님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를 비판하는 챕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페미니즘 소설로서 명성을 떨친 박완서의 작품이 도리어 성에 있어서 보수적인 한계를 극명하게 가지고 있고 오히려 여성을 옭아매고 있으며 남성에 대한 감정적 혐오를 드러내고 선동하기 위해 오히려 화자인 여성을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고 비판을 합니다.

여성들 역시 동등하게 성적 욕망과 성적 쾌감의 표출을 양지에서 당당하게 해야하며 자유롭게 요구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야 말로 성평등의 시작임을 역설하고 있지요

<문학과 성>의 다른 내용이나 다른 수업 교재인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을 살펴보면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정통한 마광수 교수의 학자적인 면을 여실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광수 교수에 대해 몇 권의 소설 작품들만을 읽고 별거 없다고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기나 하고 실망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저는 품게 됩니다.


 

당시 마광수 교수님의 즐거운 사라 사건을 담당했던 현 자한당 김진태 의원이나 같은 문학계 동료임에도 그를 헐뜯은 자들이 현재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보면 그의 선견지명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섹슈얼리티의 양성화를 주장하고 바꿔나가며 성권리를 위해 싸워나가야하는 우리가 걸어야할 가시밭길을 그가 먼저 보여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억압적인 사회 가치관에 휘둘려있는 모습들이 정말 많이 보입니다. 성평등, 성소수자, 페미니즘 운동만해도 실제적인 ‘섹스’얘기만 나오면 아직도 내외부적으로 분열이 일어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한반도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 일까요?

참여문학을 하지 않고 사랑을 노래하고 연애에 대해 글을 쓰면 개차반 취급을 받던 90년대 보다 지금이 섹스에 대해 말하기엔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대중을 옭아매고 있으며 그 결과는 20대의 성적 보수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음란함과 풍기문란을 이유로 단죄를 내렸던 이들의 더러운 이중성을 보세요.

정말 성적대상화와 수단화를 통해 여성들을 인신매매하듯 속여서 접대의 도구로 쓰고 버리는 강남의 밤을 보세요. 그 뒤에 누가 있는지 보세요.

누가 진정 더럽고 역겨운 존재인가요?

더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를 위해 솔직함을 외쳤던 교수님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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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야인시절 강연을 들었는데,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아니라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라고.
    마르고 여린 목소리로 힘껏 외치시던 기억.
    제자 하나에게도 결코 쉽게 반말 하지 않으시던
    맑고 당당하시던 분..교수식당에서도 옆에 국문과 선생들 있는데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드시고 인사하는 학생 밥값 내주시던 정말 그윽하신 분…글 좋네.진박사.
    방송 들어봤다.마음껏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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