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 프레임: 성 억압의 기제

대략 10년전쯤 열렸던 대한성학회에서 기조 강의를 했었던 모 교수의 발언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양공주, 갈보, 걸레라는 표현은 예전부터 사용했던 것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란하고 무분별한 성적 활동을 정제하고 언행을 교정하기 위해서라도 예전에 사용되었던 그러한 표현들을 다시 사용해야한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기억에 의존하여 적다 보니 워딩이나 뉘앙스가 당시와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죠.

성학의 불모지인 이 땅에 대중의 건강한 성과 건강한 성문화의 양립을 위해 설립된 대한성학회에서 이러한 발언이 나왔고 그 누구도 별다른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발언자가 아무리 연령이 높고 성장 배경으로 인한 보수성이 있을 수 있다하여도 적어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기조 강의의 한 부분으로 내세울 내용과 뜻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꽤 오랫동안 성에 대해서 이중적인 잣대를 가져왔습니다. 앞에서는 말못하고 뒤에서만 은밀하게 성 담론을 펼칠 수 있죠. 혼전순결을 강요하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요부, 정력가, 테크니션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결국 서로에게 만족을 못해 혼외정사를 위한 애인을 두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어 왔던 삶이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관념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부정적이고 이중적인 패러다임은 삶 곳곳에 뿌리 깊이 침투해 있어서 성에 대해 스스로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저를 비롯한 성학의 길을 걸으며 성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성 담론의 양성화를 위해 매일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성 담론의 양성화라는 것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좀 더 건강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성에 대해서 표현과 표출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졸리거나 배고프면 그에 대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표현을 해야 남들이 자신이 배고프거나 졸린 것을 알고 자기 자신도 그에 대한 인지를 더욱 확실하게 합니다. 그래서 연속적인 행동으로서 잠을 자거나 음식을 섭취하지요. 일상을 영위하고 건강을 지키는 것에 있어 먹고 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식욕과 수면욕이 인간의 3대 욕망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3대 욕망의 나머지 하나인 성욕은 우리는 잘 표현을 못합니다.

제한된 인원에 대해서만 어렵게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공개적으로 본인의 욕구를 드러내면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사회적 편견과 이중성을 배경으로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과 욕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되기 더 쉽습니다.

물론, 비난을 받지 않고 오히려 좋은 평판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당당하게 욕구를 표현하지만 아무나 자지 않는다’라는 자신만의 기준의 선을 명확히 긋는 경우죠. 즉, 자신이 내세우는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대상만을 자신이 선택하여 섹스를 한다는 명제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남근적인 사회에서 그들보다 우위에 서서 사회적 편향성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멋진’모습이기에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같은 동성 간에도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와 비슷하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면서 선택의 기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경우 자신이 선제적으로 ‘남이사 상관 말라. 너희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라는 식의 자세를 보이면 이에 대해선 남들이 본인과의 거리를 지킵니다. 하지만, 경험 부족으로 인한 약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인정 사정 없이 물어뜯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남녀 모두 비난의 대상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글의 초반에 밝혔던 모 교수의 프레임입니다.

사람마다 섹스를 좋아하는 정도가 다르고 그 욕구가 다르며 표현하고 즐기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확고한 기준 하에 안전한 사람만 고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한사람의 배우자 혹은 연인하고만 섹스를 즐길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크게 가리지 않고 신변의 안전만 보장되면 두루두루 캐주얼 섹스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경험치의 차이로 인해서 언행에 미숙함이 있을 수 있고 몸이 먼저 앞서 나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요.

이 경우는 남성들에게서 훨씬 더 많이 나타나기도 하는 경향 이기도 하죠(시쳇말로 섹무새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대중은 타인에 대해서 깊이 신경 쓰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과 행동만을 보고 프레임을 씌우고 자신이 생각하는 명분을 내세우며 비난을 하죠.

저는 이러한 경향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심지어 성 평등을 부르짖고 성차별의 철폐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서슴없이 억압적인 프레임을 씌우며 비난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안타깝죠.

사람마다 추구하는 섹슈얼리티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 섹슈얼리티는 추구함에 있어서 뒷받침 되어야하는 경험치는 미숙할 수 있고 그 섹슈얼리티 자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에 응해서 조언을 해줄 수도 있죠. 하지만,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 조언을 한두번만에 바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들 안에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 성에 대한 억압적 기제를 없애 나가야 한다고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직간접적으로 결국 상처 받고 스스로를 억압하며 병드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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